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이 현재의 한반도가 고려시대 때 부터 압록강 이남으로 국경이 수립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고려의 북방경계는 어디인지 그리고 과연 이게 사실인지 추적해보고자 한다. 21세기를 맞아 아직도 우리는 일제식민사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해방 80년이 되었어도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북방강역을 정확히 확인하여 역사를 배우는 우리 학생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우리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고려의 북방경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표기된 고려 강역
현재 대한민국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에는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로부터 되찾은 영역을 함경도 지방으로 표기해놓고 있다. 또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도 마찬가지로 공민왕 때 되찾은 영역을 함경도 지방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조선의 개국시조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까지 간 이유는 바로 철령위때문이다.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고 하자 우왕이 이성계를 보내 수복하려고 했으나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결국 수복하지 못하게되었고 이성계는 군사를 돌려 고려를 엎고 조선을 개창한 것이다.
조선 개창의 계기가 된 철령위에 대해서 현재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 후기 명나라가 함경남도 안변(安邊), 곧 철령 이북의 땅에 설치하고자 했던 직할지”라고 설명하고 있고 국정·검인정 교과서도 이를 따르고 있다.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한 곳이 함경남도 안변이란 것이다. 철령위를 설치한 곳은 동쪽인 함경남도 안변인데, 정작 고려군사는 왜 동쪽이 아니라 북쪽인 요동으로 향했나? 뭔가 앞뒤가 맞지않다.
명이 철령위를 함경남도 안변에 설치했으면 그럼 고려는 지금의 휴전선까지가 고려의 북방 국경이란 말인가? 왜 이런 얼토당토 않은 내용을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 버젓이 싣고 있을까?
검인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는 철령 즉 공민왕이 되찾은 강역을 함경도 중심으로 표기하고 있을까? 공민왕이 되찾은 강역은 압록강~두만강 북쪽의 옛 영토였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철령
일제식민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 는 1918년 “조선 우왕 때의 철령 문제” 에서 함경남도 안변을 철령이라고 우겼다. 안변 남쪽에 철령(鐵嶺)이라는 고개가 있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중국사료 《명사》<지리지>에 “철령 서쪽에는 요하가 있고, 남쪽에는 범하가 있다” 라고기록되어 있다. 이런 중국사료의 기록은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 모리배들이 아무리 함경도 <안변>이라고 우겨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 와 조선사편수회 간사이자 경성제대 교수인 “쓰에마쓰 야스카즈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한국의 일제를 추종하는 역사학자들이 100년 동안 이 주장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들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에서 한결같이 표기하고 있다.
왜 대한민국의 역사편찬 기관들은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사료에 기록된 철령
《명사》 <지리지> 에 따르면 철령위는 둘이 있다. 하나는 주원장이 홍무 21년(1388) 옛 철령성에 설치했던 철령위다. 또 하나는 고려의 반발에 밀려 홍무 26년(1393) 북쪽의 옛 은주(銀州)로 이전한 철령위다. 두 철령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다. ‘명사’ ‘지리지’는 철령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철령 서쪽에는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에 범하(汎河)가 있다. 또 남쪽에 소청하(小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들어간다.”

《요사》 <지리지> ‘요사’ ‘지리지’는 또 봉집현이 속해 있던 집주·회중군은 “한나라 때는 요동군 험독현(險瀆縣)에 속해 있었다”고 말한다. 요령성 진상둔진이 위만 조선의 도읍지 자리에 세운 한나라 요동군 험독현 자리라는 기록인데, 한국 학계는 위만조선의 도읍지를 지금의 평양이라고 우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명나라는 요령성 진상둔진에 ①철령위를 설치했다가 고려에서 강하게 반발하자 홍무 26년(1393) 심양 북쪽의 고 은주(銀州)로 이전하고 ②철령위를 설치했다. ②철령위는 현재 심양 북부에 있는 철령(鐵嶺)시 은주구(銀州區)다. ①철령위나 ②철령위나 모두 요령성 내에 있었다.
조선시대 철령
조선시대에는 세종 21년 공조참판 최치운을 명나라에 보내 “철령부터 공험진까지는 조선의 경계”라고 통보했다.
세종대왕때 이미 엄연히 압록강 북쪽으로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칠백리 공험진까지 우리 영토였음을 당연시 해왔던 것이다.
중국 선양시 남쪽 진상둔진에는 비석이 세워져있다. “진상둔진 봉집보” 라는 비석이 있으며 이 비석을 경계로 남쪽은 바로 고려의 땅이고 조선의 땅이었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이미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의 경계임을 통보 한 것이다.
결론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즉 조선을 강제병합 한 뒤 조선인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의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조선사 편수회를 설치하고 일본인 역사학자들을 구성해서 왜곡하면 조선인들이 믿지 않으니까 이병도 등 조선인 역사학자를 조선사 편수회에 참가시켜 한국사를 말살한 것이다.
이병도는 약 20년간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사 왜곡작업을 한 것이다. 이병도의 뒤를 이어 신석호 등이 작업을 계속하였다. 이병도는 해방후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교 수로 재직하면서 식민사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이후 대를 이어 식민사학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며 한국의 역사학계를 지배하게되었다.
이들은 단군을 부정하며 한낱 신화로 만들어 버렸고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군현을 설치하였는데 그 한4군현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반도 남쪽에는 ‘임나’라는 일본 야마토왜가 지배한 지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고려와 조선의 북방강역 또한 압록강에서 함경도 안변까지 대충 선을 그어 고려와 조선의 북방강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일제식민사학자들은 조선 민중은 그야말로 고대로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고대 일본 야마토왜의 지배를 받은 민족이니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라고해서 특별히 반감을 갖지 말고 우리 일본제국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역사부터 조작한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뉴라이트(New Right)’ 가 활개를 치면서 전방위적인 왜곡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담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 ‘정의(正義) 와 인도(仁道)” 는 뒤로 밀려나고 오로지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뉴라이트’ 사고가 사회전반에 퍼지고 있다. 이들은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폄훼하고 오히려 친일인사들이 해방후에 우리 경제를 이끌었고 지금 이만큼 우리가 잘 살게되었다는 사고로 뭉친 인사들일 것이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사회 ‘정의와 인도’ ‘도덕’ ‘애국심’ 등의 따위는 별로 소중하지 않게 여기는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가족” 단위에서 “개인” 단위로 해체되면서 극도의 개인 이기주의가 이 ‘신 자유주의’ 사상과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것이다.
국가의 미래가 암울한 이유다. “선진국 일본을 배우자” 에서 “차라리 일본 국민이 되자” 라고 했던 일제시대 문학가 이광수가 떠오른다.



